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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ALS협회 창립총회 및 제1차 학술대회 (200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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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 07-08-02 00:21    조회 2,78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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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ALS협회 창립총회 및 제1차 학술대회 (2001-05-27)




"한국ALS협회" 창립총회 및 제1차 학술대회 참관기 (이원규 2001-05-27)

저는 ALS환자로서 오늘(2001년 5월 27일) 서울대병원 본관지하1층 A강당에서 열린 ALS협회 창립행사인 창립총회 및 창립대회에 참석하여 회원가입서를 작성하고 오후1시부터 4시정도까지 진행된 모든 행사를 지켜보았습니다. 서울중앙병원 김광국의사 선생님의 매끄러운 사회로 진행된 모든 행사는 비교적 원만하게 성공적으로 치루어졌습니다. 특히 멀리 일본 JALSA 에서도 손님이 오셔서 축사를 하시는 장면은 참 보기 좋았습니다.

한 명의 환자로서 행사를 지켜본 느낌을 솔직하게 서술해 볼까 합니다. 우선 입장할 때 나누어준 『ALS환자의 용기를 실어서』라는 책자는 정말 내용이 알차고 좋은 것이었습니다.특히 「ALS관련 정보번역」은 참으로 유익해서 그야말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또한 제가 kalsa.org 홈피에 실은 글 「불치병은 없다 云云」도 실려있어서 깜짝 놀랍기도했고 약간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책표지와 간지 바탕그림에 AMYOTHROPHIC으로 써야 맞는 철자가 AINYOTHROPHIC으로 쓰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이광우선생님께서 회장으로 추대되셨고 기타 여러분들이 임원진으로 추대·임명되었습니다. 어려운 직책을 떠맡게되신 그 분들께 고마운 마음과 아울러 앞으로 저희 ALS환자들의 치료와 권익보호를 위해 더욱 많은 일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오후1시 조금 넘어 시작된 창립총회가 2시가 채 안되어 끝났고 2시30분에 창립대회가 시작될 때까지 꽤 긴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 시간동안 저는 홈피 운영자이신 박한규선생님이라도 만나서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행사요원들이 가슴에 단 명찰에는 '진행요원(?)', 또는 '도우미'라고만 쓰여있고 성함이 없어서 물어서 찾아볼려다가 언어도 불편하고 해서 그만 두었습니다. 대신에 앞자리에 계신 김광국선생님을 찾아가 "저는 선생님께 맨 처음 ALS 로 진단을 받고 투병중인 사람입니다. 집이 송파구여서 중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직장이 혜화동이어서 요즘은 서울대 이광우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라고 어눌한 말로 저를 소개했더니 선생님은 친절하고도 반갑게 이것저것 저의 건강상태 등을 물으시고 걱정해주셨습니다.

곧이어 빵과 떡, 음료 등등이 담긴 음식이 든 푸짐한 비닐봉투를 하나씩 점심식사용으로 참석자 모든 분들께 나누어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식이요법을 하는 중이라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어서 그냥 가지고 있다가 떡 몇 조각만 먹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돌아갈 때 반납하기도 뭐하고 버릴 수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그냥 집에까지 들고 왔습니다.

2시30분부터 진행된 창립대회 때는 이광우회장님의 인사말과 일본협회에서 오신 분의 축하인사가 있었습니다. 역시 예상했던대로 보건복지부장관과 보사분과위 소속 국회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관과 국회의원을 대신해서 온 아랫분들도 축사·격려사 등을 낭독한 뒤 줄행랑치듯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김승업 교수님의 특별강의도 있었는데 OHP 등을 이용하며 열심히 강의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대부분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어서 좀 지루했으며 새로운 의학계의 치료 소식 등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학력,경력, 현재의 지위 등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는 좀 짜증이 났습니다. 우리 환자나 환자가족의 의료계에 대한 관심은 의사선생님들의 화려한 학력·경력 등등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정희 환자분의 말씀은 같은 환자의 입장이어서 그런지 정말 눈시울이 뜨거워져 오는 감동으로 잘 들었습니다. 만약에 오늘 행사 중에 이정희님의 투병기 말씀이 없었다면 어쩔번했을까 할 정도로 저는 이정희님의 말씀이 가장 비중 있게 들려왔습니다. 이정희님의 말씀 중 "ALS환자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관심소홀 문제의 심각성"과 "사회제도 및 법제화된 실질적 복지제도의 시급한 필요성"에 대한 말씀은 정말 가장 가깝게 피부에 와닿는 당면문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정희씨께 모금활동을 한 이정희씨의 모교인 '배화여고' 동창회와 ALS 에 대해서 널리 알려주신 SBS-TV의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팀께 협회에서 주는 감사패 증정이 있었고 협회에 성금을 내주신 분들의 명단이 낭독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정희씨께서 동창분들이 마련해주신 성금과 기타 등등을 합해 3230만원이라는 거액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으시고 자신보다 더 불우한 환자분들을 위해 쓰라고 협회에 내놓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그분의 숭고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후3시55분쯤 창립대회를 끝으로 행사가 모두 끝났음을 사회자님께서 알렸습니다. 그러나 창립대회순서 책자에는 "기념연회"가 쓰여 있었는데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었습니다. 저는 아는 사람도 없고 그냥 자리를 뜨기도 왠지 서운해서 앞자리로 옮겨 앉아 관계자님들이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시는 광경들을 물끄러미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이광우선생님께서 제게 갑자기 오셔서 악수를 청하셨습니다. 당황한 저는 "저는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있는 환자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지긋이 웃으시며 "알고있어요."라고 말씀하시며 격려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따스하신 관심에 대단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마치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듯 관계자님들이 대회장 무대를 배경삼아 밝은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을 뒤로하고, 저는 행사장 입구에서 휠체어를 타신 저보다 더 야위고 몸이 훨씬 불편한 남자 환자분 두 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약간은 쓸쓸한 마음으로 강당을 빠져 나와 힘없는 두 다리를 약간 절룩거리며 전철을 타러 병원구내를 걸어 내려갔습니다.

오늘 행사에 있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환자와 환자가족분들, 그리고 행사준비 담당자님들 간의 대화의 시간, 친교의 시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행사장에 입장할 때 모든 입장객들께 명찰을 나눠주고 신분과 이름(예를 들어 "환자 이연기", "환자가족 홍길동", "진행요원 강감찬" 등등)을 기재한 후 패용하게 하고, 점심식사용으로 나누어주신 음식은 차라리 행사 후 조그만 연회를 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여 그곳에서 나누어주고 서로 만남과 대화, 질문과 토론 등등 사교의 장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어느 환자가족분은 오늘 총회에 참석하러 일부러 대구에서 올라오셨답니다. 그리고 저도 다른 집안행사가 있었는데도 창립총회에 참석한 것은 창립행사를 지켜보는 데에도 목적이 있었지만 저와 비슷한 환자분들은 과연 어떻게 투병생활을 하고 계신가, 현대의학이 전혀 ALS에 대해 속수무책인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환자분들은 도대체 어떤 괴로움을 겪으며 살아가실까에 대한 동병상련의 정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행사 중 실시한 특별강의도 아무런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지 못하는 의료계의 현실을 확인하는 절망적인 시간으로 채우기보다는, 차라리 협회관계자 분들이 현재 환자들의 권익보호와 생활대책 등등을 위해서 어떻게 활동하고 계시며 어느 분야에서 어떤 진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또는 환자분들이 이러이러한 일에 닥치거나 증세를 보일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실질적인 사례를 들며 설명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짙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상으로 두서없는 글을 일단 접어둘까 합니다. 저의 글을 읽고 불쾌함을 느끼신 분이 계시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몸이 몹시도 피곤하군요. 그러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한가지 더 남았습니다. 저에게 휴직을 권하신 저의 직장장님께 좀더 시간을 늦춰 휴직하게 해달라는 일종의 탄원서를 써서 내일 출근할 때 가지고 가서 사정을 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42살이고 두 아이의 아버지이며 한 여자의 남편이며 80가까운 노모를 모시고 있는 한 가정의 부양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입니다.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어서도 않됩니다.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저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기가 막힌 사연을 가지신 분들이 훨씬 더 많으리라 믿습니다. 환자 및 환자가족 여러분. 우리 끝까지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맙시다. 저는 작년에 국내 충남 어느 지역에서 als는 아니지만 극심한 근무력증 증세로 절망적인 투병생활을 하시던 어느 50대 후반의 한 여성 환자 분을 만나 뵌 적이 있는데 그 분은 병원의 치료와 병행하여 자연식과 교회(구세군)의 기도생활, 그리고 수지침 등의 각고의 노력으로 이 질병에서 완치가 되신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라는 격언을 또한 진리로써 믿으렵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그 최선의 타결책을 찾아나갈 때 하늘은 반드시 우리편이 되어 우리를 그 절망의 늪에서 건져주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시간과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저 자신뿐만 아니라 제가 알게 된 분들의 본받을 만한 투병생활, 그리고 해외 싸이트에 올라있는 도움이 될만한 글들의 번역 등을 이 게시판에 올려볼까 합니다. 아니면 이 게시판에 자꾸 글을 올리는 것이 운영자 분과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 도리어 부담을 드리게 될지도 모르니 저 나름의 홈피를 마련해 볼까 합니다. 그러나 저는 컴퓨터에 대해서 완전한 문외한이어서 저의 홈피를 만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혹시 홈피를 만들게 되면 저의 매일매일의 투병생활과 매일매일의 병의 진행상태 등도 자세하게 올려볼까 합니다.

부디 용기를 잃지 마시고 좀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투병생활을 하시어 꼭 이 als로부터 어서 빨리 회복하시기를 간절히 비오며 반드시 회복하시어 그 자랑스런 투병생활과 회복상황을 이 싸이트에 올리셔서 많은 분들께 용기를 주시기바랍니다. 저도 그런 글들을 이 싸이트를 통해 하루빨리 접하고 싶습니다.

오늘 창립한 "한국ALS협회" 준비위원님들의 물심양면의 노고에 다시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협회가 신경과의사선생님들 중심으로 구성된 학회성격의 단체를 뛰어넘어 많은 관련의료기관의 의사, 간호사,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님들, 그리고 관계당국의 공무원, 정치가, 종교단체의 성직자, 수도자님들, 신문방송기관 종사자님들, 기업체 등의 경제인, 사회독지가, 간호 등에 관심있는 자원봉사자, 또는 아르바이트 대학생 등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실 것을 감히 부탁드려봅니다.

다시한번 저희 환자들을 위해서 애쓰고 계시는 많은 분들께 고개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글을 마칩니다.




[참고글]
제 목 : 창 립 총 회 (5월27일 일요일)
작성자 : admin

"드디어 ALS협회 창립총회가 27일 서울대학교 지하 A 강당에서 개최를 확정하고
성공적인 창립총회가 되기 위하여 동분서주를 하고 있습니다.

오후 13:00 부터 시작되며 창립총회와 심포지움이 열리며 여기에 특별 초청강연으로
아주대학교 뇌혈관 센터의 김승업 교수님의 Stem Cell 치료에 대한 강연이 있을 예정이며
ALS에 관심을 보여준 일부 인사의 감사패 증정식과 개그맨 이상운씨와 연예인들이 모아준
기금 전달식, 일본 ALS 협회, 보건복지부, 보사위 국회의원, 그리고 초대 협회장의 격려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환자를 대표하여 이정희씨의 투병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대통령 영부인님의 격려금전달식도
아울러 있을 예정입니다.
이번 행사를 위하여 준비위원장이신 서울대 이광우 교수님의 100만원 성금을 쾌척 하였으며
현재 발기위원 임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서울 중앙병원 신경과 김광국 교수님,
영동세브란스 재활의학과의 강성웅 교수님을 비롯한 환자가족 대표들이 다같이
성공적인 창립총회를 기원하는 바램으로 각자의 성금을 내기로 하였으며
각 방송사와 신문사가 그 날의 행사에 초대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현재 개그맨 이상운씨는 ALS 환자 돕기 사랑의 바자회를 기획하고 5월 14일부터
명동의 밀레오네에서 연예인과 함께 행사를 열어 국민들에게 호소와
환자와 가족들을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참고글]
제 목 : 협회창립의 경과보고 및 향후계획
작성자 : admin

"루게릭은 미국 역사의 한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미국민의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야구선수 중 가장 오래된 양키스 야구단 선수인 루게릭은
야구사상 영웅으로 칭송받아 한 때 “철마”로 불리었었습니다.

그는 1939년 36세에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야구계에 은퇴 하였으며 은퇴 후
뉴욕시의 입국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계속하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루게릭의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되어 1941년 7월 2일 3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그가 죽고 수년이 지난 후, 부인이 미국 상원 소위원회에 참석하여 연구 기금을 요청 하였습니다.
그녀는 이 질병이 남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감동적이면서도 명료하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명예의 전당에 실릴 정도로는 야구를 할 수 없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양키즈 팀의 주전선수로 뛸 수 없을 정도로 경기를 잘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야구를 전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질병이 심해지면서, 옷도 혼자서 입을 수가 없었고, 혼자 먹을 것도 걷는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미국과 구미 그리고 이웃 일본에는 ALS협회를 창설하여 ALS전문병원부터 국가와
사회각지의 관심과 지원을 받으며, 사회의 온정과 자구적인 협회 활동으로 ALS환자들이 마지막까지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의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현 실정은
본인의 질병이 무엇인지 또한 그 가족들은 정보의 부족으로 우왕좌왕하며 본의 아니게 경제적
손실까지 감수하는 이중의 고통의 연속 였습니다.

인간의 질병 중에서 가장 고통 받는 질환 중에 하나인 ALS환자와 그 환자를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또한 무엇이 의무인지를 고심 하던 중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금번 대한 ALS협회를 창설하는 것 외의 대안이 없어 이 일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ALS협회 창립을 적극 도와주시고 앞으로도 이 협회를 이끌어 주실 서울대 신경과 이광우
교수님, 서울 중앙병원 신경과 김광국 교수님, 영동 세브란스 재활의학과 강성웅 교수님과 이 행사를
위하여 고생하신 환자가족 대표 김진자, 정영희, 곽재희, 이정순, 김성현, 김용석, 홍성회, 김병구님
그리고 협회 창립을 적극 지원해 주신 한독. 아벤티스 파마 김영진 사장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적극적인 참여와 의무감을 가지고 중요한 첫걸음부터 힘차게 전진합시다!
협회의 창립을 위한 경과보고와 향후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과 보고 및 향후 계획

200년 02 월 -- -- 정보 수집 및 협회창립에 대한 홍보 (Internet, homepage)
ALS 환자 및 보호자를 위한 안내책자 발간, 환자 및 보호자에게 무료 배포
- 서울대 신경과 이광우 교수 ( 7월)
- 한독. 아벤티스 파마 (7월)
08 월 -- -- 제 1차 준비모임 (한독약품 강당)
09 월 -- -- 제 2차 준비모임
10 월 -- -- 제 3차 및 4차 준비모임 (서울대학 병원)
11 월14일 -- -- 대한 ALS 협회 (가칭) 창립 발기인 모임

2001년 상반기 --- 대한 ALS 협회 창립총회
- 기금 모금행사
- 행사 바자회
- 범 국민적 관심 가지기 운동전개
- 해외 ALS협회 연계운동
- 대한 ALS협회 임원진 선출협회창립의 경과보고 및 향후계획




[참고글]
"한국ALS협회"는 2000년 당시 루게릭병 치료약 ‘리루텍’ 제조사인 ‘아벤티스 파마’에 재직 중이던 박한규(前협회복지이사) 씨와 故 송재규(2004년 작고, 시신은 루게릭병 치료연구를 위해 서울아산병원에 기증) 환우 부인인 정영희(前협회홍보이사) 씨 등이 주축이 되어 설립하기로 뜻을 모으고, 서울대병원 신경과 이광우 교수와 장동호 환우의 부인인 김진자 씨를 각각 회장과 부회장으로 초빙, 추대하였다.

그 후 2000년 11월 14일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협회창립 발기인 모임을 가졌으며, 2001년 2월에는 홈페이지(www.kalsa.org)를 개설하였고, 드디어 2001년 5월 27일에 서울대병원 강당에서 창립총회를 가짐으로서 비로소 그 첫 발을 내딪게 되었다.

한편 당시 협회 설립추진 소식을 접한 이정희 환우는 설립기금으로 써달라며 고교동창들을 통해 받은 개인후원금 3천여만 원 전액을 협회에 기증함으로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으며 협회창립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 글: 이원규 (2006-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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