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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7년차, 저는 지금 연애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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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준 작성일 14-12-25 18:52    조회 3,6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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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7년차, 저는 지금 연애기랍니다"

[루게릭 환자와 그 가족의 눈물 나는 행복여행 ]

<오마아뉴스 김혜원기자>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 그러나 날이 추워지면서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모습도 차츰 사라지고 이렇게 루게릭에 대한 관심도 사라지나 싶었다. 일부에서 제기한 일회성이니 홍보성이니, 정치적으로 흐르고 있다느니 하는 우려와 비판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려고 할 즈음, 또다시 루게릭에 대한 관심을 끌게 하는 신선한 행사가 있었다.



여행박사의 사회공헌사업(직원들의 월급 1%와 회사의 매칭그랜트로 진행)인 '트래블 스토리 두드림' 프로젝트 '소원을 말해봐'에 한 루게릭 환자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가족 여행을 소원했고, 회사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9명의 루게릭 환자와 그의 가족이 함께 하는 해외 여행을 선물했다. '사랑해요 고마워요'라는 제목으로 지난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일본 미야자키 지역에서 진행된 루게릭 환자와 그 가족들의 여행에 기자도 동행했다.-기자말



[김명훈·김두희 형제] "44세 아빠, 갱년기·사춘기 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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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 상쾌, 통쾌했던 김명훈(44, 오른쪽),김두희(40) 형제.


"동생한테 가장 고마운 게 뭐냐고요? 목욕탕 갈 때입니다. 제가 키도 크고 몸집도 있어서 웬만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데 동생이 같이 목욕을 가주면 너무 좋습니다. 아내가 잘 보살펴주고 있지만 제 큰 몸을 감당하기엔 어려움이 있거든요."


한눈에 보기에도 훈남이 분명한 김명훈(44), 김두희(40) 형제는 환자라고 생각되지 않는 유쾌, 상쾌, 발랄한 '브라더'였다. 형 명훈씨는 아직은 휠체어에 앉아서 이동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휠체어를 타야 할 날이 오겠지만 그때까지는 비틀거리고 흔들리는 걸음이라도 옆사람에게 의지하거나 지팡이를 짚고 걷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


"중학생 딸이 한창 사춘기인데 참 착하게 사춘기를 보내고 있어요. 처음엔 제 병에 대해 말하지 않았는데 제 모습이 이렇게 자꾸 변해가니 말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또 그 아이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고... 그래서 조금씩 알려주었는데 그래서인지 사춘기에도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요.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지요.

하지만 아빠인 저는 갱년기를 심하게 앓고 있어요. 한 번 우울하면 끝도 없이 마음이 가라앉거든요. 동시에 저는 사춘기랍니다. 공연히 웃음이 나오면 5분, 10분을 끝도 없이 웃어요. 저도 왜 웃는지 모르는데 그렇게 웃음이 나요. 그리고 또 저는 지금 연애기랍니다. 결혼 17년차인데 요즘처럼 아내가 예뻐 보일 수가 없어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가 제 아내라고 생각되니 저 지금 연애하는 거 맞지요? 여행에 동행한 동생과 아내 그리고 아이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지금처럼만 잘 지내자.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게. 고마워. 그리고 정말로 사랑해."


형의 말에 동생 두희씨가 멋쩍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어릴 땐 한없이 무섭고 엄했던 형인데 이렇게 아프고 나니 그저 약하고 측은한 남자일 뿐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형을 돕고 있지만 누구도 내일의 건강을 확신할 수 없기에 어제보다 오늘을 늘 의미있게 더 소중하게 보내려고 한다. 형에게도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은 오늘이기 때문이다.


"형이 아프지만 진지하고 심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남자 형제라 더 그렇지요. 언젠가부터는 서로 말도 잘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 여행을 통해 정말 오랜만에 아니 처음인가? 형과 단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됬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가 형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많은 말을 나누진 못했지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게 있잖아요. 형이 잘 견뎌줄 거라 믿어요. 형 말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상희·우수진 부녀]
"이제야... 아버지가 제 삶의 일순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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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우상희씨(64)와 딸 우수진씨(31)


우상희씨(64)는 다른 환자들에 비해 언어 기능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여행 내내 유쾌한 유머로 즐거움을 선사했다. 동행한 딸 우수진(31)씨도 아버지의 밝은 모습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뭐가 고마운지 말하라고 했는데 고마운 것 말하자면 끝이 없지요. 그래도 그 중에 가장 고마운 것은 딸이 제 용변을 받아주고 목욕 시켜 주고 하는 겁니다. 처음엔 저도 딸에게 그런 모습까지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더라고요. 아빠가 딸을 지켜줘야 하는데 이렇게 병이 들고 나니 딸이 저를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어요.


여행 오는 것도 처음엔 반대했어요. 해외까지 나가 딸에게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딸이 꼭 가자고, 꼭 가고 싶다고 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딸과 단둘이 하는 여행은 처음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딸에게 약속할게요. 수진아, 아빠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연구하는 것을 보니 곧 신약도 나올 것 같더라. 틀림없이 아빠는 나을 거야. 그래서 널 지켜 줄게. 아빠 믿지? 사랑한다. 내 딸."  


아빠가 주신 메시지를 대신 읽는 수진씨의 목소리가 떨린다.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물어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땐 오히려 펑펑 울어 버리고 나면 후련하겠지만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와 다른 열여섯 명의 환자, 그리고 가족들 앞에서 그럴 수는 없는 일. 참고 또 참다 보니 귀와 목이 벌겋게 상기되어 버렸다.  
수진씨는 여행 신청을 하며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는 심정을 이렇게 전했다.


"현대 의학으로는 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은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의 병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대 제 인생에 늘 뒷전이었던 아버지. 사춘기 시절에는 아버지가 미워서, 대학 시절에는 아버지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아져서, 그리고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일이 바빠서 함께하지 못했던 아버지. 미련하게도 아버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상황에 처하고 나서야 제 삶의 모든 일순위가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있을 때 잘하라'는 유행가 가사가 이렇게 피부에 와 닿을 수가 있을까. 저들의 하루는 우리의 하루와 다르다. 오늘 웃으며 대화를 했다고 내일도 그러리라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루게릭병이기 때문이다.


[이신우·오지은 부부]
"같은 환자들과 함께 여행오니 너무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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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병 14년차이지만 웬만해서는 휠체어를 타지 않는다는 이신우씨와 그의 아내 오지은씨


한국 루게릭협회 경기지부장으로 활동하는 이신우(55)씨는 발병 14년차이지만 보행이 가능하다. 루게릭의 양상이 각기 다르긴 하지만 특별한 경우라고 한다.


"병이 생기고 나니 여행이 쉽지 않았어요. 걸을 수 있다고 하지만 워낙 느리기도 하고 긴 거리는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제가 피하는 편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같은 환자들과 가족들이 함께 오니 너무 편해요. 누구 눈치 안 봐도 되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루게릭병이 보기에 썩 좋은 모습은 아니니까요. 음식을 먹을 때 흘리기도 하고 목에 걸려 기침도 하고 얼굴 표정도 영 좋지 않고... 사람들이 피하는 것 같으니까 우리도 피하게 되고...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아내도 많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니 더 좋았습니다."

아내인 오지은(53)씨는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괜찮지만 발병 초기만 해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14년 전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루게릭이라는 진단을 받고 철원 집으로 가는데 정말 멍한 것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더라고요. 의사가 설명을 하기 어렵다며 두꺼운 책을 한 권 주면서 읽어 보라는데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때만 해도 루게릭이 무슨 병인지 알지도 못할 때였거든요.


초기에 치료를 위해 2년 동안 서울에서 남편 혼자 지내고 저는 철원에서 두 아이를 키웠거든요. 주말이면 반찬이며 뭐며 해서 남편을 찾아오고 또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그렇게 지냈어요. 남편이 저에게 아주 고마운 약속을 해주시네요. 제가 죽으면 묻힐 묘자리를 국립묘지에 마련해 놓았대요. 남편이 국가유공자니까 저도 그럴수 있다는데 이거 고맙고 행복한거 맞지요. 여보 고마워요. 사랑해요. 하하하."
       


[원명복·최계자 부부]
"아내가 힘들어할 때 남편도 비애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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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는 원명복씨와 그의 아내 최계자씨


원명복(68)씨는 이번 여행이 아내 최계자(62)씨와 함께 하는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거라며 남겨질 아내에게 멋진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젊을 땐 자식 키우느라 미뤄 두었던 해외여행. 퇴직 후 여유롭게 여행도 하면서 그동안 서운했던 마음도 풀어주며 남은 여생을 보낼 꿈을 꾸었지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퇴직과 동시에 루게릭이 찾아온 것이다.


"아내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밥도 먹을 수 없고 물도 마실 수 없고 목욕, 면도, 용변 처리... 아내가 아니라면 누가 해주겠어요. 몇 년 전 딸들과 사위들이 저를 도와서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가 된 보람도 있었고요.


또 이번 여행도 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런 특별한 시간에 아내에게 할 말이 있다면 제가 요즘 많이 슬프고 외롭다는 겁니다. 아내가 힘들어 지치고 아파할 때 곁에서 지켜보는 남편도 비애를 느낍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지요. 요즘엔 정말 눈물이 많아졌어요. 툭하면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아내에게 약속합니다. 죽는 날까지 변함없이 사랑하겠다고요. 여보, 지금도 사랑하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이장호·양다미 부부]
"'위기 부부'였던 우리, 오히려 단단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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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게릭 진단을 받은 후 부부 사이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는 이장호, 양다미부부

이장호(34), 양다미(34) 부부는 일행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부부다. 펄펄 날아다닐 나이인 30대 중반에 루게릭에 걸려 조금씩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남편을 보는 아내의 마음은 한없이 안쓰럽고 측은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부부는 결혼 직후부터 위기의 부부였어요. 서로 생각이 강해서인지 자주 싸우고 서로를 힘들게 했는데... 그래서 이혼까지도 생각하던 중에 남편에게 병이 찾아왔어요. 루게릭이라는... 무서운... 확진을 받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 남자에게는 나밖에 없구나. 내가 지켜줘야 겠구나... 그런 결심 같은 것이 생기더라고요. 아직은 초기라 잘 모르지만 여기 오신 다른 분들 보니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견뎌내시는 것 같아 저도 힘이 납니다. 제 남편이 저에게 전해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저에게는 항상 웃어줘서 고맙다고 하고요. 아내와 4살짜리 아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하네요. 음... 그리고 남편이 아프기 전에는 벤츠 공식 딜러였는데 지금은 병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되어서 그게 걱정이래요. 아프고 힘들어도 어떤 방법으로든 처와 자식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역할을 해낼 테니 지켜봐 달라고요. 어떤 어려운 상황이 와도 가정을 꼭 지키겠다고 저에게 약속했어요. 그리고 사랑한다고요. 여보, 저도 사랑합니다. 힘내고 잘 이겨내길 바라요."



"루게릭 환자 24시간 활동보조서비스 이루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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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전하는 짧은 연애편지 쓰기는 눈물과 웃음, 박수와 환호 속에 진행되었다. 어쩌면 죽는 날까지 서로에게 하지 못할 뻔했던 이야기들이 웃음과 눈물 속에서 오고가는 시간. 이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한국루게릭병협회 조광희(55)사무국장이다. 그녀 역시 루게릭병이었던 가족을 11년간 간병했다.


"떠나가신 지 3년 되었어요. 그런데 지금도 잠을 잘 못 잡니다. 한 시간마다 일어나 가래를 빼주고 호흡기를 만져주고 했던 습관이 그대로 남아 지금도 한 시간마다 잠에서 깨지요. 그래서 루게릭병 환자와 가족을 보는 마음이 남다릅니다.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사실 이번 여행도 걱정이 많았답니다. 여행 오신 분들은 그래도 상태가 좋은 분들이지만 혹시라도 잠자리에서나 이동 중에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의사 선생님이 동행하셨지만 비상 상황에 대비해 일본루게릭협회의 지인에게 연락을 취해 두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한 분도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즐겁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돌아오니 이제 편히 숨이 쉬어지는 것 같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지난 아이스 버킷 챌린지 행사에 대해서도 물었다. 얼마나 많은 후원이 들어왔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1만 명 정도의 후원자가 천 원부터 천만 원까지 귀한 후원금을 보내주셨습니다. 미국루게릭병협회에 보내진 후원금이 1천억 원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고 들었지만 한국은 아직 10억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고요. 미국루게릭병협회로 직접 보내신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우리 협회로 전화하셔서 미국루게릭병협회 계좌를 묻는 분도 있었거든요. 정확한 총액은 집계가 완료되면 투명하게 정리된 자료로 공개할 것입니다.


루게릭병 환자들은 24시간 가족이나 기계에 의지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간병비, 인공호흡기 착용으로 인한 소모품비, 폐렴으로 중환자실을 드나드는 의료비 등 부담이 적지 않지요. 그런 이유로 안타깝게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았습니다. 또한 투병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점차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되기도 합니다. 보내주신 후원금은 이처럼 어려움에 처한 루게릭병 환자들의 의료비 지원, 특수영양식 지원, 환자용품 지원 등에 사용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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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 사무국장은 이번 기회에 루게릭병 환자들을 대신해 꼭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생존에 관한 모든 것을, 24시간을 가족의 간병을 받아야 하는 우리 환자들의 입장은 처참할 정도로 열악합니다. 루게릭병을 비롯한 인공호흡기 환자들에게 24시간의 활동보조를 지원해 주었으면 합니다. 최근 호흡기 착용 환자의 사고사에 대한 보도도 있었습니다. 24시간 활동보조가 가능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입니다.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24시간 활동보조 서비스는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하고 시급한 지원입니다. 24시간 활동보조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들과 정책 담당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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