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호흡기는 휠체어와 같은 보조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광희 작성일 13-06-16 10:05 조회 2,958회본문
“인공호흡기는 휠체어와 같은 보조기”
지난 4월,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의 한 병상에 앉아 있는 38세 김찬일씨. 퇴원을 앞둔 그는 이곳으로 이송돼오기 전까지 2주간 기도삽관을 해 목소리가 나오진 않았지만, 표정만은 가볍고 평온했다. 어쩌면 기도를 절개한 채 꼼짝없이 여생을 누운 채로 살았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호흡재활센터 교수진(강성웅 교수, 최원아 교수)은 그를 다시 숨쉬게 했다.
“앞길 구만 리인 아들,
일생 누워 살게 할 순 없었다”
김찬일씨는 루게릭병 환자다. 2년 전부터 서서히 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지만, 2주 전 이산화탄소 수치가 높아 입원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회사에 다닐 정도로 건강했다. 그런 그가 치료 도중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해당 병원에서는 기도절개 수술 외에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절망한 가족들은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김씨를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로 이송했다. 전쟁 같은 2주를 보낸 가족들은 그간의 이야기 들려주며 내내 눈물을 훔쳤다.
“처음 입원한 병원에서는 찬일이가 쓰러지자마자 바로 기도절개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거라는 말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몇 시간 전까지 멀쩡하던 애를 앞으로 남은 일생을 병상에서 살게 할 순 없었어요. 마침 찬일이 동생이 수소문해서 강성웅 교수님을 찾았습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강 교수님은 곧바로 찬일이를 맡겠다고 하셨어요.”
김씨는 지금 퇴원하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다. 이송돼 온 지 꼭 일주일만이다. 기도절개도 하지 않았고, 인공호흡기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김 씨의 어머니는 “기도절개를 하지 않으면 곧 죽을 거라던 아들이 이렇게 멀쩡하게 퇴원한다”며 “강성웅 교수님이 아들이 아니라 우리 가족을 살렸다”고 말했다.
호흡재활치료는 근육이 점점 퇴화해가는 근육병, 루게릭병, 척수성 근위축증 등의 진행성 신경근육계 질환과 만성기관지염이나 폐기종에 의해 공기 흐름이 막히는 만성폐쇄성 폐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호흡에 장애를 일으키는 증상을 완화시켜 자가호흡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다. 특히 신경근육계 질환 환자들은 서서히 신체 근육이 퇴화해 호흡근육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호흡재활은 이들에게 생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치료가 되는 셈이다.
호흡재활센터 강성웅 소장
그가 도래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강성웅 교수는 우리나라 호흡장애 환자들에게 새 숨을, 새 삶을 불어넣어준 사람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국내 유일의 호흡재활센터는 호흡장애 환자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특히 강 교수가 본격적으로 호흡재활에 뛰어든 2000년은 우리나라 호흡재활치료의 역사가 이쪽과 저쪽으로 갈라진 해라고 할 수 있다.
신경근육계 질환 환자들의 90%이상이 호흡부전으로 사망하고, 평균수명이 20살 안팎이었던 과거에 비해, 그가 치료한 환자들은 현재까지 모두 살아 있을 정도로 사망률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모두 살아있으니 평균 수명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강 교수는 처음 전문의로서 근무를 시작한 1992년, 재활의학과에 몸담은 의사로서 두렵고 당혹스러웠다고 회고했다.
“당시 근육병 환자들은 정신도 말짱하고 판단력도 그대로인데 단지 호흡마비 때문에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손 쓸 방법을 몰라 의사들은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죠. 환자와 그 가족의 슬픔은 물론이고, 의사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무력감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죠.”
강 교수는 재활의학교실 조교수 시절, 이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존 바흐(John Bach) 교수가 있는 미국 뉴저지의대로 연수를 떠났다. 바흐 교수의 애제자로 성실하게 진료와 연구에 매진한 끝에 2000년 다시 돌아온 강성웅 교수.
강 교수의 귀환과 함께 우리나라 호흡재활의학분야의 역사는 새로 쓰여지기 시작한다. 그가 호흡재활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한국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은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치료 결과를 국제 세미나에서 발표하면 모두가 놀랄 정도로 환자들의 예후가 좋았다. 치료 기계도 여러 대 개발했다. 대표적인 것은 호흡장애 환자가 기도절개를 하지 않을 경우 가래를 뱉어 내지 못해 폐렴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환자가 기침을 하지 못해도 가래를 빼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한 것이다.
강 교수는 진료와 연구, 교육 이외에도 대외적인 홍보를 게을리하지 않기도 유명하다. 찾아오는 환자들만 봐도 빠듯할 터인데, 그는 왜 홍보에도 많은 시간을 쏟는 걸까?
“호흡재활의 가장 큰 장애물은 사회적인 인식 부족이라고 생각해요. 환자가 자가호흡이 안돼서 인공호흡기를 써야 한다고 하면, 환자나 보호자, 심지어는 의사들까지도 ‘이제 끝났다, 아무것도 못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에요. 그러면서 벌써 ‘안락사’니 ‘존엄사’니 자꾸 그런 걸 생각하잖아요?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매일 인공호흡기를 사용해야 하지만 목 수술 없이 마스크로 필요한 시간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호흡기 없이 자유롭게 외부 생활도 할 수 있는 환자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다리 아픈 이들이 휠체어 타듯 호흡근육 약한 사람들에게는 인공호흡기가 보조기에요, 인공호흡기를 편하게 생각해야 해요. 본인에게 도움을 주는 기계로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강성웅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호흡부전 환자들의 치료비가 한 가정에서 부담하기에는 너무 크다며, 사회적으로 이 환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말을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의사가 의술만 뛰어나다고 환자들에게 이토록 추앙 받을 순 없는 일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