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눈 싸인(Sign)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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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향순 작성일 10-12-03 12:09 조회 2,468회본문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의 말문을 닫게 할 때가 있겠지... 이놈의 루게릭이
하루도 빠짐없이 어디를 망가뜨릴까? 여기저기를 툭툭이며 온 몸을 배회한다.
이놈을 꺼낼 수 있다면 목을 잡아서 시멘트 바닥에 태기라도 치고 싶다.
여보! 내가 눈을 한번 깜빡이면 OK이고 두 번이면 NO야!
미리 우리만의 싸인을 주지시키며 이 무슨 시츄에이션(Situation)인가? 마주보며 실소(失笑) 한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박탈감으로 깊은 우울감에 괴로웠다. 그나마 내게 위로를 갖게 한건 짧은 글이지만 나를 표현하고 잦아드는 기억을 끄집어내고 또 생각토록 하는 한편 답답한 내 마음의 비상구가 되었다.
그마저도 팔에 조금씩 힘이 줄어들고 있어 오래 할수는 없을 것 같다. 노트에서 컴퓨로 워딩(Wording)하는 과정이 환자인 나에겐 많은 힘이 소진되는 듯싶다.
이후 그와 눈 싸인(Sign)으로 소통을 좀더 쉽게 하기위해 그전에 나는 말을 많이 하고 표현을 많이 해 두어야 하기에...
루게릭이 발병한지 7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는 걸 보면 과연
축배의 잔을 들어 올릴 희망은 있기나 한 건지 답답한 우리의 미래다.
위로 인지 진심인지 내 반쪽은 말한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거기에 적응하다 보면 살만하다고 하면서 그저 옆에서 숨만 쉬어도 좋아 당신 없이 혼자 살기에는 너무 쓸쓸하지!“
울컥 슬픔이 밀려온다.
오래되는 내 병에 얼마만큼의 인내로 지켜낼 수 있을까?
몇 십년간 어르신을 모시며 아침저녁 출퇴근 인사를 드리며 그분의 존재감과 관심을 끊임없이 주지시키던 그다. 어르신에 대한 정중함과 독하리 만큼 자기 절제와 조용한 인내에 나는 질렸었다.
베풀고 보상받지 못하는 세대가 된 것에 대한 묘한 심술이 발동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지금 내 아들은 아빠보다 엄마와 깊은 마음의 소통을 많이 하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더 깊은 마음의 보상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 아들은 영원한 마음의 울타리라고
언젠가 TV에서 초등학생이 쓴 글을 보며 남아선호 사상에 마침 표를 찍어야 할 것 같은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예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와 놀아 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단지 생활비를 조달 하는 위치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에 참으로 씁쓸해 지는 글이다. 더욱 이 시대에 아빠를 외롭게 하는 건 똑똑한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태평양 건너 사라지고 아버지는 라면을 끓이며 모니터에 잠깐 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소위 기러기 아빠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한 가정의 군주였다.
.
나는 내 아들에게 전화로 당부한다. 장인 어른께 등도 자주밀어 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장모님껜 엄마에게 보다 더 챙겨 드려야 해! 아들은 화답 한다 “음 그래야지”
가슴 한 구석이 휭 하니 시려 온다.
아들은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안부를 하며 내 걱정을 끔찍이 할 텐데 말이다.
어미가 생각하는 아들은 그 누구보다 소중 하다.
하지만 아들을 곁에서 챙겨주시는 사돈은 더욱 더 내게 소중하다.
피곤함으로 편히 눕고 싶다. 서서히 육체의 감옥으로 침잠(沈潛)할 듯 몸이 무겁다.
내일 내 영혼은 얼만큼 의 무게로 가벼워 질까?
난 마음속으로 희망한다. Andante! Andante! 점점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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