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오늘 루게릭 환자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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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희 작성일 08-02-09 20:56 조회 2,795회본문
어느 분이 오늘 "당신의 증세가 루게릭병 입니다." 라고 신경과 의사로부터 전해들었답니다.
나는 그 사연을 듣고 손을 내밀어 위로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앞으로 펼쳐질 시간의 고문에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자세도 저런자세도 취할 수 없는 엉거주춤의 상황에서 그래도 무언가 입을 열어야 하기에....
"두려워 마세요. 많은 환자들이 감사하며 10년이상 잘들 견디고 계세요. 실존의 의미만 상실하지 마세요."
저는 14년차 루게릭 환자 이정희 입니다.
많은 사건을 겪었고 지금도 날마다 크고 작은 위기와 함께 살고있는 인공호흡기 환자지요. 진행속도가 늦어 7년 만에 휠체어에 앉았고 12년 되었을 때 기도절제를 하여 호흡기를 달았지요.
처음 2~3년 동안 참 받아 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당시에는 협회도 없고(물론 게시판도 없었지요) 체험수기책도 없고 아무리 둘러봐도 경험담 하나 들을 수 없었습니다.
2001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처음으로 루게릭환자가 세상에 공개되었지요. 그때 나는 '호랑이 굴에 잡혀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가 있습니다.' 라고 카메라 앞에서 얘기 하였습니다. 그런데요 사실 정신을 바짝차리려면 적도 알아야하고 앞으로 펼쳐질 최악의 경우도 알아야 하고, 또 현제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가도 파악해야 하는 정보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갖고있는 정보는 치료약이 없다 와 호흡곤란으로 죽는다는 것과 그리고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박사사 생존해 있다는 세 가지 사실 밖에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 손에 두 장의 페이퍼를 건네 받았습니다.
정신차림의 실체를 보았죠. 그 페이퍼 안에서...
미국 루게릭 게시판에 올라온 40대 여환자의 사진과 사연은 내가 그토록 갈망하였던 정신차림의 모델을 만난 것 입니다.
그녀는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설혹 루게릭병으로 꼼짝없이 두 분만 깜빡거린다 하여도 나는 소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을을 가질 것입니다. 치료약이 개발되어 내 이 두다리로 서서 또는 두 팔을 마음껏 벌려 내 사랑하는 가족을 힘껏 안을 시간이 주어질 것을 나는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봉사자의 도움으로 옷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봉사자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내 진료차트가 있는 병원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환자와 가족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내가 경험한 최선의 것을 알려줍니다. "
지금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녀는 3~4년차의 환자였고 지역 루게릭협회에서 보호자들과 함께 정부측에 치료개발비 예산을 증액 시켜달라는 운동도 펼치고 있었습니다. 당시 아무런 목표도 전심으로 집중할 꿈도 없던 내게 그 여환자의 삶은 캄캄한 속에서 한줄기의 빛이 되어주었습니다. 비로소 루게릭을 앓으면서도 실존에 의미를 발견한거지요. 그 날부터 나는 삶에 의미를 갖게 되었고 더 이상 루게릭은 나를 절망시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붙잡았던 희망의 용기. 믿음의 확신. 헌신적 사랑. 내게는 막연하기만 하였던 이 모든 추상적인 가치가 갑자기 생명을 받아 구체적으로 튀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국내에서는 이광우교수를 중심으로 신경과 의사분들과 몇몇 환자와 보호자들 사이에 한국에서도 루게릭협회의 필연성을 논의하는 시기에 와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내가 해야 해야될 역활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나 또한 새로운 환자에게 모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정신차림의 실체가 되어 루게릭이라는 고통을 끌어안고 아니 뛰어 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루게릭환자의 실체를 알리는데 주저하지 않고 나섰습니다.
그러한 나의 행위는 우리의 복지가 향상되고 이 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또한 환자와 가족들의 심리적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만 있다면 하는 심경에서였습니다. 아니 우리도 어떤 형태이든지 살아있음이 아름답다고 우리끼리 더욱 뭉치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병상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어 외칩니다.
"두려워 맙시다. 그리고 게시판을 열어보세요. 당신의 지금 상황에 맞는 적절한 조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과정을 거쳐 여기 함께 있습니다. 실존의 의미만 상실하지 맙시다. 사랑합니다. "
병상에서 오늘도 이정희 올림.
나는 그 사연을 듣고 손을 내밀어 위로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앞으로 펼쳐질 시간의 고문에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자세도 저런자세도 취할 수 없는 엉거주춤의 상황에서 그래도 무언가 입을 열어야 하기에....
"두려워 마세요. 많은 환자들이 감사하며 10년이상 잘들 견디고 계세요. 실존의 의미만 상실하지 마세요."
저는 14년차 루게릭 환자 이정희 입니다.
많은 사건을 겪었고 지금도 날마다 크고 작은 위기와 함께 살고있는 인공호흡기 환자지요. 진행속도가 늦어 7년 만에 휠체어에 앉았고 12년 되었을 때 기도절제를 하여 호흡기를 달았지요.
처음 2~3년 동안 참 받아 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당시에는 협회도 없고(물론 게시판도 없었지요) 체험수기책도 없고 아무리 둘러봐도 경험담 하나 들을 수 없었습니다.
2001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처음으로 루게릭환자가 세상에 공개되었지요. 그때 나는 '호랑이 굴에 잡혀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가 있습니다.' 라고 카메라 앞에서 얘기 하였습니다. 그런데요 사실 정신을 바짝차리려면 적도 알아야하고 앞으로 펼쳐질 최악의 경우도 알아야 하고, 또 현제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가도 파악해야 하는 정보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갖고있는 정보는 치료약이 없다 와 호흡곤란으로 죽는다는 것과 그리고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박사사 생존해 있다는 세 가지 사실 밖에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 손에 두 장의 페이퍼를 건네 받았습니다.
정신차림의 실체를 보았죠. 그 페이퍼 안에서...
미국 루게릭 게시판에 올라온 40대 여환자의 사진과 사연은 내가 그토록 갈망하였던 정신차림의 모델을 만난 것 입니다.
그녀는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설혹 루게릭병으로 꼼짝없이 두 분만 깜빡거린다 하여도 나는 소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을을 가질 것입니다. 치료약이 개발되어 내 이 두다리로 서서 또는 두 팔을 마음껏 벌려 내 사랑하는 가족을 힘껏 안을 시간이 주어질 것을 나는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봉사자의 도움으로 옷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봉사자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내 진료차트가 있는 병원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환자와 가족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내가 경험한 최선의 것을 알려줍니다. "
지금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녀는 3~4년차의 환자였고 지역 루게릭협회에서 보호자들과 함께 정부측에 치료개발비 예산을 증액 시켜달라는 운동도 펼치고 있었습니다. 당시 아무런 목표도 전심으로 집중할 꿈도 없던 내게 그 여환자의 삶은 캄캄한 속에서 한줄기의 빛이 되어주었습니다. 비로소 루게릭을 앓으면서도 실존에 의미를 발견한거지요. 그 날부터 나는 삶에 의미를 갖게 되었고 더 이상 루게릭은 나를 절망시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붙잡았던 희망의 용기. 믿음의 확신. 헌신적 사랑. 내게는 막연하기만 하였던 이 모든 추상적인 가치가 갑자기 생명을 받아 구체적으로 튀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국내에서는 이광우교수를 중심으로 신경과 의사분들과 몇몇 환자와 보호자들 사이에 한국에서도 루게릭협회의 필연성을 논의하는 시기에 와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내가 해야 해야될 역활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나 또한 새로운 환자에게 모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정신차림의 실체가 되어 루게릭이라는 고통을 끌어안고 아니 뛰어 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루게릭환자의 실체를 알리는데 주저하지 않고 나섰습니다.
그러한 나의 행위는 우리의 복지가 향상되고 이 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또한 환자와 가족들의 심리적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만 있다면 하는 심경에서였습니다. 아니 우리도 어떤 형태이든지 살아있음이 아름답다고 우리끼리 더욱 뭉치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병상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어 외칩니다.
"두려워 맙시다. 그리고 게시판을 열어보세요. 당신의 지금 상황에 맞는 적절한 조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과정을 거쳐 여기 함께 있습니다. 실존의 의미만 상실하지 맙시다. 사랑합니다. "
병상에서 오늘도 이정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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