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사장 나쁜병, 루게릭병… 알고 있나요?

한국루게릭협회 이광우 회장 인터부


17년째 한국루게릭병협회 이끌고 있는 길병원 이광우 교수

[청년의사 신문 양금덕] 지난 2014년 8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인사들이 연이어 얼음바구니를 뒤집어 썼다. 루게릭병(Lou Gehrig's disease)이라고 불리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환자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이들을 돕기 위한 릴레이 기부 캠페인이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 운동이 확산되면서 적잖은 기부금이 모이기도 했지만 한때 스쳐지나가는 유행처럼 그렇게 루게릭 환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식어갔다.

이에 서울대병원 재직시절부터 16년째 한국루게릭병협회장을 맡으며 환자들의 가족이자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는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이광우 교수가 나섰다.
이광우 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병은 루게릭병’이라며, 어떤 질병인지 널리 알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기부문화가 확산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한국루게릭병협회는 환자와 환자가족들이 주축이 돼서 운영되고 있다. 협회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초대부터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20년 전만해도 루게릭병 환자들은 정보를 얻을 데가 없었다. 전국 각지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와서 나에게 진료를 받곤 했다. 그때 멀리 오는 환자에게 차마 3분 진료를 할 수 없어 월요일 오후에 별도의 클리닉을 만들어 운영해 왔다. 그렇게 10~20여명의 환자들에게 충분한 진료를 해주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들이 같은 날 만나게 되더라. 서로 정보교환을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연구회가 만들어졌다.

그러다 2001년 2월 이정희 환자의 사연이 SBS에 보도되면서 한바탕 눈물바다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소식을 들은 이정희 환자의 고교 동창생들이 삼삼오오 돈을 모아 3,200만원의 성금을 줬고 그녀가 연구회에 기부했다. 이 종잣돈이 지금의 루게릭병협회를 만들게 됐다.

- 국내 루게릭병 환자는 3,000여명이다. 질병특성상 생존기간이 짧고 최근에는 젊은 층에도 많이 발병하고 있다. 루게릭병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달라. 이 병은 어려운 병이고 나쁜 병이다. 대뇌피질과 뇌간, 척수 등에 있는 운동세포가 손상되고 파괴돼 신체 운동기능 장애가 발생하는 질병이다. 평균 생존기간은 3~4년 정도로, 환자 본인이 상태가 나빠진다는 것을 안다는 게 참 잔인하다. 기억력이나 정신상태는 온전하니까 말이 어눌해지고 삼키는 것도 힘들어지면 '곧 호흡마비가 오겠구나'하고 본인이 스스로 알게 된다. 이런 환자가 국내 2500여명이고 매년 500~600명의 환자가 새롭게 생기고 있다. 하지만 개인병원에 갔다가 큰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을 포기하는 환자들도 있어 정확한 통계를 잡기도 어렵다. 실제 환자수는 더 많을 것이다.

- 30여년간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해 온 것으로 안다. 환자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사연이나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병리학적으로 보면 처음에는 경과가 빨리 진행되다 느려지는 구간이 있다. 그때가 물리치료가 필요한 때이다. 근육은 안쓰면 확실히 나빠지기 때문에 물리치료를 잘해주면 경과를 늦출 수 있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민간요법으로 더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
2000년 초 서울대병원 외래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에게 다가가 낫게 해주겠다며 봉침치료를 권한 사람이 있었다.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강원도 원주에 있는 봉침을 하는 한의원으로 갔다고 한다. 문제는 그 중 갑자기 질식을 하고 증세가 더 악화돼 온 환자들이 있었다. 희망을 가지고 찾아간 환자들이 돌아올 때는 몸도 안좋아지고 돈도 잃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환자가 많다. 협회를 만드는데 기여한 이정희씨, 가수 션과 활동하는 박승일 씨 등도 기억에 남는다. 2년전에 돌아가신 이원규씨는 성균관대 문학박사였고 루게릭 인터넷 카페를 잘 운영해서 루게릭 박사라고도 불렸다. 환자들의 계몽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 본인도 움직이기 힘든데 아내와 함께 환자들이 물어보는 정보들을 알려주곤 했다. 그는‘굳은 손가락으로 쓰다’라는 에세이도 썼다.

- 협회서 환자들에게 치료비 등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 회장뿐만 아니라 자문위원들도 있던데 어떤 역할을 하나.

환자들은 24시간을 돌봐줄 간병인이 필요하다. 협회로 들어오는 후원금과 기부금으로 일정부분 간병비나 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도 회원 중 20명에게 각 100만원씩 2,000만원의 의료비를 보조해주기로 하고 지난 24일 열리는 제16차 학술대회 및 정기총회에서 의료비 지원 전달식을 가졌다. 그 외에도 호흡기와 간병인 지원, 영양식도 보조하고 있다. 인터알리아공익재단이 매년 1억~2억씩 후원하고 아이스버킷챌린지로 7억원의 기부금이 모아졌다. 많은 단체들이 기부해준 기부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협회에는 진료자문위원이 있다. 한양대 김승현 교수, 연세대 강성웅 교수, 아산병원 김광국 교수, 아주대 주인수 교수 등 7~8명이 참여하는데, 현장에서 루게릭병 환자를 치료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자문도 하고 협조도 하고 있다. 위원들은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서로 연락을 해서 환자들이 보다 편안하고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 루게릭병 환자를 위한 요양병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 아내가 루게릭병에 걸리면 남편이 손과 발이 되어야 한다. 직장도 못다니고 늘 케어를 해줘야하니 수입도 없어 집안 전체의 경제력도 나빠진다. 그래서 환자 5명당 1명씩 보호자들이 돌아가면서 돌보면 나머지 4명은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루게릭병 요양소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렵다. 루게릭병은 움직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기도가 막히는 응급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호흡기를 달고 있는 등 종합병원 수준의 시설이 필요하다. 요양원 개설에 2억원이 든다면 루게릭병환자를 위한 병원은 50억원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일반 요양병원으로 환자가 가기도 어렵다. 간병비까지 월 150만~200만원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환자가족들 스스로가 기피하고, 일부 요양병원은 힘든 환자라 환영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지금은 과거보다 좋아져서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요양보호사를 지원해주고 인공호흡기에 대한 지원을 받아 보통은 집에서 가족이 케어하는 경우가 많다.

- 치료법이 없는 질환이라 환자들을 진료할 때 심적인 부담이 클 것 같다.
30년 동안 노력은 많이 했는데 치료제 개발에 결론을 못냈다. 외국에서도 임상시험을 하면 효과가 없다고 나오곤 한다. 지난해 GSK에서 후보물질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결국 효과가 없다는 통보가 왔다. 마음이 아프다. 현재로서는 리르텍이라는 약을 사용하고 있을뿐이다. 효과도 미비해서 2년간 약을 쓴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6개월 더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상개선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환자들이 오면 지금도 말을 쉽게 못한다. 환자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로 결과를 듣기 때문에 판결하듯 말하지 않고 에둘러서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환자 절반은 '루게릭병 맞죠?'라고 묻는데 그러면 나는 '예후는 나쁜 병인데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길게는 17년까지 살기도 하니 걱정하지 말고 병원에 열심히 다니라'고 말한다. 그래도 다들 알고 있다. 2~3년 후면 본인이 죽게 된다는 것을.

- 환자들을 위해 정부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계몽이 필요하다. 과거에 비해 정부의 지원이 많이 늘었지만 이 환자들만을 위해 돈을 더 달라고 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국가단위 연구는 더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환자수가 몇 명이냐고 반문하지만 그래도 선별적으로 연구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퇴행성 연구가 많이 뒤쳐져 있다. R&D 지원을 강화해서 집중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또 기부문화가 활성화 돼야 한다. 최근에는 기부를 하고 난 이후 연말 정산 혜택이 줄어들고 있다. 국가가 선진화 되려면 기부문화를 활성화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의료진들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일선 병원의 의료진들은 루게릭병 환자를 보는 일이 적어 이 질병에 대해 잘 모른다. 환자들이 오면 큰 병원에 가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줬으면 한다. 지금은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다니는 상황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루게릭병 환자는 생존기간이 짧아서 협회 내 임원들도 자주 바뀐다. 그러다보니 기부금등 예산 운용 때문에 16년간 협회장을 맡게 됐다. 이제는 다른 이에게 넘겨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아이스버킷 챌린지 운동이 있었던 한달 정도 반짝 사람들의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 이벤트성으로 TV에 나오는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우려했던 것처럼 아이스버킷 챌린지 운동은 깜짝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다.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심이다. 이들에게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 주길 바란다.

양금덕 기자 truei@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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